이전

문화재연혁

메뉴열기
천순원년 이윤손 유서
  • 종목 : 국가지정 문화재 보물 제 1289호
  • 명칭 : 천순원년 이윤손 유서 (天順元年 李允孫 諭書)
  • 수량/면적 : 1장
  • 지정일: 1998.12.18
  • 소재지: 서울 중랑구 중화동 개인 소재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관리자 : 이영옥

원문해석

『 유평안도도절제사이윤손 / 경수위일방체임비경범 / 병응변안민제적일/

(諭平安道都節制使李允孫) / (卿受委一方體任匪輕凡) / (兵應變安民制敵一)

응상사자유구장려혹 / 유여여경독단처치 / 사즉비밀부막가시위

(應常事自有舊章慮或) / (有予與卿獨斷處置) / (事則非密符莫可施爲) /

고사친압제십사밀부경 / 기수지고유 / 천순원년삼월십이일 /

(故賜親押第十四密符卿) / (其受之故諭) / (天順元年三月十二日)

평안도도절제사 이윤손에게 하유(下諭)한다. 경(卿)이 한 지역의 위임을 받았으니 책임이 크다.

군사의 동원과 변란의 대처, 백성의 안전과 적(敵)의 제압 등에 관한 것은 모두 별도의 구장(舊章)이 있으나,

만일에 과인이 경(卿)에게 독단처치(獨斷處置)하게 할 일이 있게 되면 밀부(密符)가 아니하고서는 행할 수 없다.

그래서 친압(親押)한 제십사밀부(第十四密符)를 내리니 경(卿)은 이를 수령(受領)하라. 이런 이유로 하유(下諭)한다. 』

천순원년 3월 12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 1289호(1998.12.18 지정)인 이윤손 유서는 세조 3년(1457년) 3월 12일 세조께서 친히 날인한 “제14밀부(第14密符)”를 내린다는 내용의 유서를 말한다.

이는 이윤손이 세조 원년(1455년) 8월 19일 평안도 도절제사(세조 12년 관제개편에 의해 병마절도사로 개칭)로 임명된 후 관례에 따라 유서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윤손의 본관은 가평이며 이다림의 맏아들로 태종14년(1414년) 10월 3일 한양에서 태어났으며, 세종20년(1438년) 무과에 급제하여 경상좌도 병마절제사, 강원도 관찰사, 한성부윤, 호조참의, 중추부지사(中樞副知事) 등을 지냈다.

유서는 국왕이 군사권을 가진 관원에게 내리는 명령서로 조선시대에는 관찰사, 절도사, 방어사, 유수(留守) 등이 왕명 없이 군사를 발동하거나 역모를 일으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다.

국왕이 밀부(密符)를 내릴 때는 유서를 함께 내렸으며, 관원에게서는 매우 귀중한 것이어서 항상 유서통에 넣고 지니고 다녔다.

현재 이 유서는 중화동에 거주하고 있는 이윤손의 19대 손인 이영옥씨가 소장하고 있다.

6보루터
6보루터
7보루터
7보루
  • 종목 :  국가지정 사적 제 455호
  • 명칭 : 아차산일대 보루군
  • 수량/면적 : 용마산 일대 161,000m2
  • 지정일: 2004.10.27
  • 소재지: 용마산 5,6,7 보루 / 망우산 1보루
  • 시대 : 삼국시대
  • 관리자 : 서울특별시

원문해석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 455호(2004.10.27 지정)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중랑천과 아차산, 용마산일대, 3번 국도 변에 남북 방향으로 집중 분포하고 있는 둘레 100~300m의 소규모 보루들로, 출토유물이나 축성 방법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의 유적이며, 고구려가 5세기 후반에 한강 유역에 진입한 후 551년에 신라와 백제에 의해 한강 유역을 상실하기까지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전개된 삼국의 역사상을 밝혀줄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10여개 보루는 현재 남한 내에 가장 집중적으로 분포하는 고구려 관련 유적으로발굴을 통해 고구려 군사시설의 면모가 규명되고 있으며, 이를 통해 고구려 관련 고고학적 성과가 기대되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아차산 일대 보루군은 홍련봉 1ㆍ2보루, 아차산 1ㆍ2ㆍ3ㆍ4ㆍ5보루, 용마산 1ㆍ2ㆍ3ㆍ4ㆍ5ㆍ6ㆍ7보루, 시루봉보루, 망우산 1보루, 수락산 보루 등 17개 보루이며, 이들 보루 중 중랑구 소재 보루는 용마산 5ㆍ6ㆍ7보루, 망우산 1보루이다.

아차산 봉수대 터 전경
  • 종목 : 서울특별시 지정 기념물 제15호
  • 명칭 : 아차산 봉수대 터
  • 수량/면적 : 114.5㎡
  • 지정일 : 1993.11.30
  • 소재지 : 서울 중랑구 묵동 산46-19 상세지도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자/관리자 : 서울시/중랑구

원문해석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15호(1993.11.30 지정)인 아차산 봉수대지는 조선시대 전국 5개 봉수로(烽燧路) 중에서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하여 강원도를 거쳐 포천 잉읍현(芿邑峴)에서 올린 봉수를 받아 남산으로 연결하는 제1봉수로의 마지막 봉수대인 아차산 봉수대가 있던 자리다. 현재의 봉수대는 1994년 11월 7일 모형을 설치한 것이다.

아차산 봉수대는 봉화산 봉수대라고도 하는데 봉화산 위에 봉수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봉화산은 봉우재라고도 한다.

한동안 아차산 봉수는 광진구 광장동의 아차산 위에 있었다고 믿어왔으나, 조선시대에 만든 [대동여지도] 등의 옛지도에는 봉화산을 아차산으로 적고 있어서, 아차산 봉수대도 이곳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해발 160.1m의 봉화산 정상에 봉수대를 설치한 까닭은 인근에 높은 산이 없어서 봉화를 올리면 눈에 잘 띄었기 때문이다.

봉수제도는 변경의 급한 사정을 불이나 연기를 이용하여 중앙이나 또는 변경의 다른 요새에 알리는 동시에 해당 지방의 주민에게도 알려 빨리 대처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에서 실시된 것이다.

봉화는 평사시 1번, 적이 나타나면 2번, 경계에 접근하면 3번, 경계를 침범하면 4번, 접전하면 5번을 올려 보고토록 하였다.

봉수제도는 조선전기에 발전하였으나 임진왜란 후에는 제 구실을 다하지 못하다가 고종 31년(1894년) 폐지되었다.

  • 종목 : 서울특별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95호
  • 명칭 : 충익공 신경진 묘역(忠翼公 申景진 墓域)
  • 수량/면적 : 신도비 1기, 묘 1기 등 / 4,458.2 ㎡
  • 지정일 : 1995.01.25
  • 소재지 : 서울 중랑구 망우동 산 69-1 상세지도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 : 평산신씨 전청공 종중
  • 관리 : 평산신씨 충장공 종중

원문해석

서울특별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95호(1995. 1.15 지정)로 망우동 산 69-1(용마공원입구)에 소재하고 있다.

 

신경진은 임진왜란 때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도순변사(都巡邊使) 신립 장군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선전관으로 벼슬을 시작하여 오위도총부 도사로 임명된 후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인조반정의 성공으로 정사공신 1등이 되어 병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인조 14년(1636년)에는 훈련원, 호위청, 포도청의 3대장을 겸하였다. 병자호란 때의 공적으로 우의정, 좌의정을 거쳐 인조 18년(1640년) 평성부원군(坪城府院君)에 임명되었다가 인조 20년(1642년) 영의정에 올랐으나 병으로 사퇴하였고, 이듬해 다시 영의정으로 임명된 지 열흘만에 세상을 떠났다.

신도비는 높이 368㎝나 되는 거대한 석비(石碑)로 화강암으로 조각된 거북받침대 위에 올려져 있으며, 비(碑)몸 위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용머리 장식이 정교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신도비는 우암 송시열(宋時烈)이 비문을 짓고 박태유(朴泰維)가 글씨를 썼으며 머리글인 두전(頭篆)은 이정영(李正英)이 썼다.

옹기장 배요섭
  • 종목 : 서울특별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30호
  • 명칭 : 옹기장 배요섭
  • 지정일 : 2002.09.16
  • 소재지 : 서울 중랑구 신내동 398 (봉화산로 53길 32)

원문해석

서울특별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30호(2002.9.16 지정)인 배요섭 씨(중랑구 신내동 거주)는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 송천리에서 한미요 배씨 토가(대표 배연식)에서 잿물 없이 구워낸 “푸레토기”를 제작하고 있다.

“푸레토기”는 흙으로 빚어낸 그릇에 아무런 유약(잿물)을 입히지 않고 장작가마에 구워낸 전통 옹기를 말한다. “푸레”란 뜻은 푸르스름한 빛깔을 띤다는 뜻이고, “토기”라 함은 잿물을 입힌 옹기와는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한미요 배씨 토가의 배요섭 씨(1926년生)는 4대째 이어오는 옹기 장인이다. 배요섭 씨의 고조부도 많은 옹기장인들이 그러하듯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를 피해 산 속에서 생업으로 옹기 굽기를 시작했다. 배요섭 씨는 “논 서마지기 물려받는 것보다 낫다”는 할머니의 권유로 옹기장이의 길로 들어섰다.

옹기장이의 길로 들어선 배요섭 씨는 일제시대 일본의 핍박과 해방 후 플라스틱 그릇들이 쏟아지고 우리 스스로 문화에 자긍심을 잃어가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우직하게 우리 옹기의 자긍심을 지켜오면서, 88년도부터 미국 50개 대학과 예술센터에서 한국의 전통 옹기를 선보이고 미국에 한국식 가마를 세우기도 했다.

일본 도자기만 알던 미국인들은 배요섭 씨가 빚어 보이는 초대형 독에 감탄사를 자아냈고, 그의 둘째 아들 배연식 씨와 함께 우리 도자기사에 거의 잊혀져 가고 있는 “푸레토기”를 재현시켰고 그 공적을 인정받아 2002년 9월 16일 서울시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봉화산 도당굿 모습
  • 종목 : 서울특별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34호
  • 명칭 : 봉화산 도당굿
  • 지정일 : 2005.01.10

원문해석

서울특별시 지정 무형문화재 제34호(2005.1.10 지정)인 봉화산 도당굿은 400여년 동안 주민의 안녕과 결속을 위하고 대동의식을 고 취시켜 온 서울의 마을굿으로, 서울시 중랑구 신내동 산 141번지에 위치한 봉화산의 도당에서 음력 3월 3일(삼짇날)에 지내는 마을 굿이다.

봉화산 도당굿은 처음에 중화동, 상봉동, 신내동이 함께 힘을 합쳐 지내오다가 근래에는 마을을 나누어 한 해는 신내동이 다음 해에 는 중화동과 상봉동이 도당굿을 주관해 오다가 최근부터 중랑문화원의 봉화산도당제 보존위원회를 중심으로 매년 개최되고 있다.

봉화산 도당굿은 하루 전날 당주가 도당에 직접 올라와 도당굿에 필요한 제물을 점검하면서 시작되며, 다음 날에는 산신할머니 신상 이 있는 제당과 아래 공터의 제단에 제물이 차려진다.

왕십리 무녀와 잽이 5명이 제단 바로 아래쪽 길에서 잡신의 부정이 들지 못하게 막아주는 부정거리로 시작하여 아침부터 초저녁까지 진행되며 온갖 잡귀를 풀어 먹이는 뒷전을 끝으로 도당굿을 마무리한다.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제34호) 보유자

무형문화재(제34호) 보유자 정보
명칭 기.예능 보유자 지정 및 인정이유
성명 성별 생년원일 주소
봉화산
도당굿
무녀 신위행 1939.5.26 서울시 중랑구 상봉동 신위행은 봉화산 도당굿의 당주무당으로 계보가 명확하고 기예가 뛰어난 무당이므로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인정함.
악사 김광수 1945.11.23 서울시 강남구 대치동 김광수는 봉화산 도당굿의 악사로 40여년 무악연주에 무굿악사 계보가 확실하고 기량이 뛰어나므로 서울특별시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인정함.
아미타괘불도
아미타괘불도
복장주머니
복장주머니
복장유물
복장유물
  • 종목 : 서울특별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320
  • 명칭 : 법장사 아미타괘불도 및 복장유물(法藏寺 阿彌陀掛佛圖 및 腹藏遺物)
  • 위치 : 묵1동 25-4 (숙선옹주로 69)
  • 지정일 : 2011. 09. 08

원문해석

이 괘불도는 19~20세기에 서울 경기지역에서 대활약을 펼쳤던 고산 축연(古山竺演)이 1923년 수화승(首畵僧)을 맡아 자월(慈月), 학송(鶴松), 덕주(德柱)를 거느리고 조성하여 경성부 숭인동 감로암(甘露庵)에 봉안한 불화임

발원문과 화기가 온전히 남아 있고, 예가 드문 복장주머니 또한 거의 완전한 형태로 구비되어 있으며, 적·녹색 위주에 청색이 일부 첨가되는 전형적인 19세기 불화의 화풍을 잘 보여주며, 고산 축연의 어느 작품보다 인물의 형태가 정제되고 색채가 안정되고 조화로워 예술성이 돋보인다는 점에서 서울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됨

/WEB-INF/jsp/mobile/cts/04/01/01/0401010101.jsp